판타지는 실재하지 않아

예전의 서울에서는, 한때는 말이지, 커다란 폴로셔츠에 역시나 커다란 바지와 닥터마틴인지 닥터아인슈타인인지하는 커다란 구두를 신고 백팩을 줄을 콱 늘여서 매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폴로스타일' 대학생들의 표준패션이었다고들한다. 그 당시 난 중학생이었고, 외국에 나가있을 기회가 제법 많아서 Gap이나 BananaRepublic으로 무장해 다닐 시기였다. 사진을 보면 지금보다 그때가 훨씬 낫다. 정말로.

그런데 지금은? 그 시대의 '폴로스타일'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얼마전에 그런 스타일의 사람을 강남역에서 봤는데, 솔직히 좀 아니었다. -_- 

그러다, 고등학교엘 오고서, 날 과외하던 의대다니던 고등학교 선배가 바로 그 폴로스타일의 표준을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이사람과의 인연은 질기고도 질겨서 지금은 친형제와 같은 사이가 되어버렸다. 유럽도 같이 다녀왔지; ) 당시로써는 대학생을 볼일이 별로 없던 나에게 '아! 대학생이라면 무릇 차림새를 이리해야하는 거군!!!" 이라고 철썩같이 믿어버렸고, 대학교에 가거든 나는 폴로로 도배를 하고 다니리라고 다짐을 했더랬다.

그리고, 수능이 끝나고 광란의 12월과 1월 그리고 2월이 시작되고, 난 중학교때까지만해도 상당한 트렌드세터였건만, 고등학교때 급격히 불어난 몸무게와 사복이라고는 사주지도 않는 부모님덕에 모든것을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해야만했다. 우선은 고등학교 입학 당시 68kg의 테니스로 단련된 몸은 3년의 먹고 앉아서 공부하고 먹고 앉아서 공부하고의 다람쥐 쳇바퀴 구르는 생활로 103kg로 불어나있었고, 일단은 감량이 최우선 과제였다. 피나게 몸무게를 빼고나니 졸업식때까지 20kg이 빠졌다. 83kg 감동했다. 하지만 더빼야한다!!! 다시 빼기 시작해 대학교 입학식 무렵 나는 76kg을 찍고, 1학기가 끝나고 2학기말엽쯤 70kg대에 도달하는데 성공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많은 살을 빼서 힘이 없어 다시 73-4kg대를 유지하게 된다. 자, 살빼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3년의 공백기가 내 감각을 모조리 빼앗아가버렸다...라는거다. 난 옷을 어찌 입어야 할지 모르는 우왕좌왕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그 상태로 난 서울로 상경했다.  

아니, 대학을 와봤더니 나는 다들 폴로를 입고 다닐 줄 알았더니만 다들 이상한 빠숑들을 하고 다니네??? 폴로는 늙그수레한 복학생아저씨들이 걸치거나 아니면 폴로의 본질을 왜곡해 입는 아해들의 패션코드로만 존재하는게였다. 예컨데 털이 숭숭난 다리에 7부 반바지를 입고 이상한 폴로 롱슬리브 티셔츠를 입고 뿔테 안경을 쓰고 아디다스 크로스백을 앞으로 매고서는 이상한 모양의 나이키 신발을 신는 아해들말이다. 난 분노했다. 저건 폴로의 본의미를 왜곡하는 짓이야!!!!!! 라고 속으로만 분노의 포효성을 질렀다. 헐리웃영화의 백인중산층애새끼들의 이미지까지는 아니어도 나의 판타지 단정한 폴로스타일은 도대체 어디로 가셨나이까를 외치며 살아갔더랬다. 가끔씩 깔끔한 횽들을 보기도 했다. 2006년 가을밤 서초 11번 마을버스에서 본 어떤 횽은 폴로를 이용한 프레피룩의 절정을 달리는 스타일이었다. 그 후에도 가끔씩 잘 이해하고 잘 입은데다 옷걸이가 좋아 잘 받쳐주는 횽들을 몇몇 봤다.  



< 한국에서 이걸 제대로 시도하는 횽을 본적은 아직 없다..라기보단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멋지다. try 해볼 자신은 없다.>


그 후 나름대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나는 '내' 스타일을 어느정도 찾았고,  먼치킨스러운 돈지랄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내 판타지였던 '폴로스타일'은 이미 한물가버린 구닥다리 트렌드인데다, 남성패션잡지 에디터들이 들으면 기절할만한 사항인 '사이즈가 오버되는 옷'으로 치장하는 스타일이었던거다. 그리고 이제 슬슬 폴로가 지겨워지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이런 스타일로 가게 되어버렸다. 단, 운동화는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로퍼로 바뀌었고, 라운드 티셔츠대신 사이즈가 딱 맞는 폴로셔츠로 바뀌었다. 바지는 헐렁한 투턱에서 딱 붙지는 않지만 꽤 슬림한 노턱 면팬츠로 갈아입었다. '뭐야? 그럼 저 그림은 왜 내다건거야?'라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뭐 대충 비슷한 느낌이라서 내다 걸었다. 요즘 트렌드를 따르다기 보다는 당시의 비정상적인 트렌드를 벗어나서 사이즈가 딱 맞는 옷들을 입게 되었다는거다. 그래도 폴로는 살짝 헐렁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결국, 대학교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에 올라가는 지금, 내 고등학교때의 판타지였던 캠퍼스엔 폴로셔츠에 마틴박사님의 구두를 신은 남녀로 넘쳐날꺼야라는 알량하고도 순박했던 판타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됐다. 게다가 소비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현대의 인간이 바로 나 자신임도 알게됐지. 끊임없이 사재낀다. 돌아버리겠다. 지식인 되기에는 글러먹었다. 그래 나 이런 놈이야.
 
p.s 사실, 잠깐 외도를 하겠다고 작년 F/W 시즌에 타임옴므에 간 적이 있었다. 내 능청스러운 연기로 잘 입어보고 나왔지만 거기서 옷 뽑아 입으려면 엔터키 치고 show me the money 몇번은 쳐줘야 되겠더라. 그래서 난 오늘도 내 폴로셔츠를 고이 다림질 한다.


p.s 2 써놓고 보니 요점이 뭔지 왜 썼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썼다. 내 판타지는 갔다.

<the end>

by 순딩이 | 2008/02/01 01:50 | what?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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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2/01 09: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순딩이 at 2008/02/02 08:59
제 이상형이 그 페라가모 머리띠나 버버리 머리띠에 단화 고이 신어주신 귀여우신 여성분인데, 요즘 찾기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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